[독해백서] Ⅱ. 독해의 원리-독해를 결정하는 기본 능력들
언어과학연구소/독해백서 2012. 2. 1. 12:49 |
스터디포스에서 발간한 [독해백서:'讀과 解에 관한 모든 것'] 연재
두번째 챕터 '독해의 원리', 그 일곱번째 포스팅입니다.
[독해백서 목차]--------------------------------------
Ⅱ. 독해의 원리
1. 글 읽기의 지각과정 | 하상처리
2. 글 읽기의 인지과정 | 상하처리
[1]독해에 관여하는 복잡한 처리과정들
[2]독해 처리과정의 단계별 메커니즘
[3]독해력을 결정하는 기본 능력들
3. 독해의 원리 | 하상처리와 상하처리의 완벽한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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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 읽기의 인지과정 | 상하처리
[3]독해력을 결정하는 기본 능력들
1. 작업 기억 용량(working memory span)
작업 기억은 영어의 ‘working memory’를 번역한 말로 미국의 심리학자인 Baddeley가 기억에 관한 새로운 이론에서 일반화시킨개념이다. 그런데 요즘 작업 기억이란 말이 방송과 신문에 오르내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그것은 작업 기억이 독해능력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며 독해능력이 모든 공부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은 단어의 뜻을 파악하여 문장 전체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부터 각 문단의 핵심어와 글의 구조를 파악하여 전체글의 주제를 이해하는 과정까지 아주 복잡한 처리과정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처리과정은 작업 기억에서 이루어진다. 작업 기억 용량이 적으면 앞에서 읽었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여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읽어야 하므로 읽는 속도가 떨어지고 글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이해하였다고 하더라도 글 전체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글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적절한 수준의 작업 기억 용량은 공부에서 필수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작업 기억이 무엇인지 조금 더 알아보자.
작업 기억에 대한 이론이 나오기 전까지 이중기억이론(dual memory theory)이 기억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이었다. 이중기억이론에서는 기억이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기기억은 외부에서 주어지거나 장기기억에서 떠올린 정보를 잠시 저장하는 기능을 하는 기억 저장소이고, 장기기억은 단기기억에서 암송이나 의미적 체제화에 의해 전이된 정보를 아주 오래 기억하는 기억 저장소로 보았다. 우리가 자주 듣는 ‘magic number 7’ 이란 말은 단기기억에 일시적으로 저장될 수 있는 정보의 개수가 7±2개이며 이 숫자가 문화나 연령과 무관하게 비슷하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다. 머리에 떠올려진 정보를 유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단기기억은 인간이 뭔가를 생각하는 동안에 작동하는 ‘의식(consciousness)’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Baddeley는 이중기억이론에서 말하는 단기기억의 개념이 이러한 인간의 의식을 나타내기에는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하고 다양한 연구를 통해서 단기기억을 대신하여 인간의 의식을 나타내는 작업기억의 개념을 제안하였다.
작업기억은 그림 2-10과 같이 음운루프(phonological loop), 시공간-메모장(visuo-spatial sketchpad), 중앙관리자(central executive)라는 세 가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음운루프는 소리에 기초한 정보를 유지하고 조작하는 곳으로 우리가 말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 작용하는데 책을 읽는 동안 단어에 대한 정보는 그림으로 저장되지 않고 음성으로 전환되어 음운루프에 저장된다. 또한 시공간-메모장은 시각정보와 공간정보를 저장하는 곳으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보았거나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을 때 그것에 대한 정보가 저장되는 곳이다. 음운루프나 시공간-메모장은 단기기억과 마찬가지로 정보를 저장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중앙관리자는 주의를 음운루프나 시공간-메모장에 할당하거나 장기기억에서 정보를 탐색하고 탐색된 정보와 새로운 정보를 통합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능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ADHD와 같은 주의결함장애를 보이게 되어 정상적인 학습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2. 의미단위 읽기 능력(semantic unit reading ability)
일반적으로 우리는 글을 빨리 읽으면 이해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글을 빨리 읽을수록 이해가 어려워진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느리게 읽을 때 이해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글을 읽을 때 느리게 읽는 것이 왜 더 큰 문제인지 두 가지 듣기 방식을 비교하여 알아보자.
‘철수가 어제 친구를 만나서 축구를 하고 오후에는 공부를 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서점에 들러 책을 샀다. 집에 와서는 이 책을 다 읽고 독후감을 썼다.’ 라는 문장이 있다. 처음에는 ‘철·수·가·어·제·친·구·를·만·나·서·축·구·를·······’ 식으로 문장이 천천히 1초에 한 글자씩 또박또박 들렸다고 가정하자. 이번에는 같은 문장이 2~3배 빠른 속도로 들렸다고 가정하자. 어느 쪽이 더 이해하기 쉬울까?
느리게 듣는 것보다 빠르게 듣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느리게 듣게 되면 들리는 개개의 소리가 하나의 정보단위로 처리되며 우리 작업기억의 용량은 7±2개로 매우 적기 때문에 용량을 초과하게 되면 먼저 들었던 내용은 기억에서 점차 사라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느리게 듣게 되면 전체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빨리 들으면 같은 시간 동안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고 그것으로부터 중요한 내용을 묶어서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기억의 용량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빠르게 듣는 것이 더 쉽게 이해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개 두 번째 방식으로 말하고 듣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말하고 듣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숙달하여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읽기를 한번 생각해 보자. 듣고 말하는 것에서는 개인차가 별로 없지만 눈으로 읽는 것은 조금 다르다. 글을 읽는 것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각 개인별로 숙달된 정도가 서로 다를 수 있다. 평균적으로 분당 960~1,500자를 읽을 수 있어야 정상적인 독해가 가능하지만 일반인들의 평균 글 읽는 속도는 500자 내외에 불과하다. 이렇게 독해속도가 떨어지게 된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멀티미디어에 익숙해지면서 책을 읽어서 정보를 찾기보다 영상이나 그림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려 하고, 글을 읽더라도 요약된 짧은 글을 주로 읽어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랜 기간 집중적 읽기를 게을리 하면 글이 조금만 어려워도 한 번에 읽지 못하고 뒤로 회귀하거나 한 글자나 한 단어씩 또박또박 읽는 습관이 생겨 글을 읽고 난 후에도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가장 큰 문제는 요즘 아이들은 글을 읽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독서를 해 온 아이들은 글을 읽는 방법을 스스로 체득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잘못된 방법으로 글을 읽기 때문에 독해속도가 늦어 책을 읽기 싫어하게 되고 참고 끝까지 읽더라도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게 된다.
잘못된 읽기 습관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예를 들어 보자.
‘꿀벌의 꼬리춤은 전체 동물의 의사소통 체계 중 가장 정교한 것으로 유명하다.’ 라는 문장이 있다고 하자.
잘못된 읽기 습관이 몸에밴 아이들은 ‘꿀벌의/ 꼬리춤은/ 전체/ 동물의/ 의사소통/ 체계/ 중/ 가장/...’ 처럼 한 단어씩 읽거나 심지어 ‘꿀/벌/의/꼬/리/춤/은/전/체……’ 처럼 한 글자씩 읽는 아이들도 있다. 이렇게 읽으면 읽기 속도가 크게 떨어지고 입력된 정보가 금방 작업기억의 용량을 초과하기 때문에 듣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올바른 읽기 습관을 가진 아이들은 ‘꿀벌의 꼬리춤은/전체 동물의/의사소통 체계 중/가장 정교한 것으로/유명하다.’ 처럼 읽거나 ‘꿀벌의 꼬리춤은/전체 동물의 의사소통 체계 중/가장 정교한 것으로 유명하다.’ 처럼 끊어서 읽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안구 상으로는 한 단어씩 빠르게 읽어 나가지만 뇌에서는 의미가 완결되는 단위(의미단위)로 글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읽기 방법을 ‘의미단위 읽기’ 라고 하는데 ‘의미단위 읽기’는 글의 내용을 의미단위로 구분하여 받아들여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읽기속도와 이해 정도가 증가할 뿐 아니라 작업기억의 효율성을 높여 은 내용을 효과적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해준다.
3. 언어 사고력(linguistic thinking ability)
수능 언어영역은 학생들의 언어사고력을 평가하고자 하는 시험이다. 언어 사고력은 ‘문제를 제기하거나 해결하고, 결정을 내리며, 사물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정신과정으로, 해답을 위한 탐구와 의미를 추구하는 행동’이라고 정의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할 때 분석의 과정을 거쳐 추론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기 때문에 분석력과 추론력이 언어 사고력의 핵심적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생각을 표현하거나 타인의 글이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므로 분석력은 글의 이해과정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논리학에서는 분석적 사고를 글로부터 추론에 사용될 논리적 형식을 추출하는 과정으로 여기는데 여기에는 복잡한 문장구조로부터 명제들을 분리해 내고 명제들 간의 관계를 연결하는 것을 포함한다.
분석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추론은 정확하게 이루어졌지만 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모든 죄인은 형사책임을 면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형사책임을 면할 수 없다.
추론과정만으로 보면 이 주장은 형식 상 오류가 없지만, 분석에서 내용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즉, 전제에서 언급된 ‘죄인’은 ‘형사적 의미’와 ‘종교적 의미’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을 고려하지 않아서 이와 같이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분석력에는 명제에 포함된 내용의 오류에 대한 분석뿐 아니라 글에 제시된 내용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것을 비롯한 다양한 능력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것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 내용상 오류를 파악할 수 있다.
- 도표, 자료가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다.
- 의견을 비교하고 대조할 수 있다.
-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수 있다.
- 글 다음에 이어질 말을 예측할 수 있다.
- 상대방의 주장 전개에 사용된 추론양식을 알 수 있다.
추론(reasoning)은 추리(inference)와 자주 혼동되는데 논리학에서는 논리적 사고가 이루어지는 절차를 추리라고 하고 그것이 언어적으로 표현되었을 때 추론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양궁선수가 3년 동안 모든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기록을 바탕으로 앞으로 있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생각을 하는 과정을 추리라고 하고, 다음과 같이 전제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을 추론이라고 한다.
홍길동은 지난 3년간 모든 국제대회에서 우승하였다. (전제)
따라서 홍길동은 다가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것이다. (결론)
논리학에 따르면 정확한 추론을 위해서는 추론의 규칙을 지켜야 하는데 대표적인 추론 유형은 연역(deduction)과 귀납(induction)이다.
연역은 삼단논법과 같이 전제가 옳은 경우에 결론이 옳은지를 밝혀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귀납은 유추나 인과관계와 같이 개별적인 사실들로부터 일반적인 사실을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내용의 오류가 있을 경우에는 추론과정 자체에 문제가 없더라도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 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택한 추론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글을 읽을 때 추론이 필요한지의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추론의 존재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기 때문에, ~이므로’와 같은 전제를 나타내는 말이나 ‘그러므로, 그래서, 고로, ~을 의미한다.’와 같은 결론을 나타내는 말이 있으면 추론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만일 추론이 존재한다면 그 전제와 결론을 확인하고, 순서대로 정리한 후 불필요한 내용은 제외하거나 요약한다. 그 다음에는 너무 뻔해서 글의 흥미를 줄이기 때문에 빠져있는 전제들을 추가하고, 마지막으로 추론의 정당성을 평가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추론력은 다음의 두 능력으로 정의될 수 있다.
첫째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주장에 적합한 전제나 근거가 제시되지 않을 경우에는 논리를 제대로 전개하더라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글의 주장을 비판하려고 하더라도 반박에 필요한 타당한 증거를 제시해야 하고 추론의 타당성을 검증해야 한다. 즉, 근거가 제시된 주장인지 단지 근거 없이 단언만 제시된 주장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과 그 주장에 적합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둘째는 ‘추론규칙에 맞게 추론하는 능력’이다. 타당한 전제를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논리의 전개과정이 타당하지 못하면 주장은 정당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심 주장과 그것에 필요한 근거를 찾아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즉, 추론력을 갖추었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 가능하다.
- 주장에 적합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 근거가 제시된 주장과 근거가 없는 단언을 구분할 수 있다.
- 논리전개 과정이 타당하다.
- 표현되지 않은 전제와 가정을 알 수 있다.
- 중심주장과 그것을 지지하는 근거를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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